1909년 12월 14일 경기도 수원군(현재 화성시) 양감면 정문 2리 포당동에서 출생.
1923년 양감면 사창리 소재 보신 강습소 입학.
1924년 배재고보 입학. 박팔양 시인의 영향을 받아 민족문학에 눈을 뜸.
1928년 3월 배재고보 4년을 수료하고, 일본대학 정경과에 입학하였으나 사상관계로 출학 후, 귀국.
1928년 말 카프에 연맹.
한편 청년운동과 농민운동에 관여하여 3년 여 감옥생활.
1929년 6월 『조선지광』에 단편 「농민」을 발표함으로써 문단에 등장하고, 이후 해방되기까지 수필, 시, 문학평론을 왕성하게 발표.
1945년 8?15해방 후 수원군 인민위원장 등으로 활동.
1948년 8월 가족과 함께 입북한 후 조선 민주주의 인민공화국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문화선전성 예술부장을 역임.
1970년 조선작가동맹 개성시 지부장을 지낸 것을 끝으로 이후의 행적은 확인할 수 없음.